제 어머니는 제가 세상에서 제일 잘 난 줄 아셨어요. 주변에서 남들이 덕담이랍시고 하는 빈 말에 고무되셨지 싶어요.
“큰 아들, 총각 강화군수된다고 고시공부하고 있시꺄? 얼마나 좋시꺄? 우리 아들은 가방끈이 짧아 인항버스 조수로 취직했시다.” 그랬어요. 새벽종이 울리면 너도 나도 모두 일어나 새마을 운동했지요. 그때 그 시절 제 고향 마을에 대학생은 드물었어요. 지금이야 너와 나 우리 모두 대학생이 차고 넘치지만……. 하니 열세 살 때 청운의 꿈을 안고 어머니의 손을 놓고 고향을 떠나 온 이래요. 금방(金榜)에 이름 걸고 어사화(御賜花) 머리에 꼿고요. 금의환향(錦衣還鄕) 한답시고 고집하던 저였으니요. 제 어머니를 탓할 일이 아니었지요.
더구나 땅 팔고 소팔아 어렵사리 대학교육을 받은 친척 형이요. 서울 장안의 부잣집 사위가 되었어요. 인생 역전했다고 온 동네방네 소문이 자자했으니요. 제 어머니는 어쩌다 들어오는 제 혼담을요. 일언지하에 거부하시곤 했어요. 강화도 교장 딸도 면장 딸도 이장 딸도 새마을 지도자 딸도요. 갯마을 과부집 딸도 고개 넘어 동네 목장집 딸마저도……. 어머니는 제게 말씀하셨어요. "공부도 한 때란다, 색시감은 얼마든지 있단다. 탤런트 김자옥이를 데려 올 수 없느냐? 니 어머이는 자옥이를 며느리감으로 찍었단다." 최근 깜짝 놀랐어요. 제 어머니가 일언지하에 거부하셨지요. 이웃동네 목장집 따님이 봉황새가 되셨다 하니요.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제 어머니나 저나 어리석은 중생들이요. 어찌 봉황새를 알아 보았으리요? 혹시라도 영부인께서 제 글을 보실 수 있다면요. 이러실 것 같아요.
“아이고! 별 미친 놈 뒤질 때가 되었나, 별 헛소릴 다하고 있네, 내가 하마터면 똥 밟을 뻔 했네 그랴, 이놈아! 내가 얼이 빠진 미친년이 아니고서야 , 무엇이 아쉬워 너같이 고시낙방해 7급도 벼슬이라고 빛도 이름도 없이 허덕이는 통일꾼 쫄때기를 거들떠나 보았겠냐고? 총각군수커녕 용케 통일꾼으로 밝혀죽지 않고 살아온 것은 가상하다만, 그 입 다물거라, 아가리를 찢어 놓기전에, 내가 남에 남자 아가리 찢어 밥도 못먹게 만들만큼 독한 강화댁은 아니다만” 웃어요. 웃자고요. 웃으면 복이 와요.
다가오는 인연들 지나치는 인연들 잘 살펴보세요.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인연을 맺느냐에 따라서요. 인생의 그림이 모두 다 확 달라지니까요. //끝// - 글 윤애단(용범) -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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